[아르떼 칼럼] 비올리스트 메건은 의대에 갔다

입력 2024-01-26 18:04   수정 2024-01-27 00:42

음악이 아니었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대답은 디자인과 건축이다. 디자인 중에서도 화면이나 지면을 아름답게 구성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반면 건축은 공간 설계와 구성을 통해 어울림의 조합을 기능에 접목하는 분야이다 보니 평면 디자인과는 결이 다르다.

초등학교 3학년 미술시간에 담임 선생님은 장래의 꿈을 그려 보라고 했다. 고민 끝에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은 전선이 정신없이 엉켜 있는 통 속에 앉아 시간 여행을 준비하는 김 박사의 모습이었다. 교내 발명왕 대회에서 배터리로 구동하는 미니 선풍기로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스위치를 누르면 날개가 돌아가는 하나도 창의적이지 않은 그냥 선풍기였다. 4학년이 돼서는 막 배우기 시작한 ‘나비야’ 때문인지 ‘내 꿈은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제목으로 글짓기 숙제를 한 기억도 떠오른다.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아버지는 나를 바이올린 학원에 보냈다. 긴 생머리를 한 소녀 같았던 선생님은 휠체어에 앉아서 수업을 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 때문에 양쪽 다리에 장애가 생겼고, 손으로 조작하는 특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고 다니셨다. 선생님은 친절했고 모든 학생을 사랑으로 대하셨지만, 수업은 항상 꼼꼼하고 엄격했다. 이듬해 겨울, 새 선생님과 준비한 예술계 고등학교 입시에 낙방한 뒤 바이올린을 그만뒀다.

1939년생인 아버지는 어린 시절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처음 접했다고 했다. 황량하던 시대에 경험한 서양 악기의 신비로움은 어린아이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소원대로 두 아들 중 큰아들은 당신의 업을 이어받아 현악기 제작자의 길을 걷게 됐고, 바이올린을 때려치운 둘째는 비올라로 마음을 다잡아, 2년 후 음대생이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서 줄곧 생활한 스텔라는 스탠퍼드대 진학 대신 뉴욕행을 선택했다. 1년 동안 다니던 줄리아드를 포기하고 하버드로 학교를 옮겨 심리학을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진로를 정할 줄 알았던 그가 다시 줄리아드로 돌아와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박사 과정 중 경험 삼아 도전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깜짝 우승을 하더니 최근에는 링컨센터, 그라모폰이 주목하는 젊은 연주자에 선정됐다.

비올리스트 메건에게는 오랜 바람이 있었다. 줄리아드 졸업 후 카네기홀 펠로로 선정돼 연주자로서의 미래가 밝았는데 돌연 뉴욕대 의대에 진학했고, 지금은 시애틀에서 내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따뜻한 톤과 안정된 음정의 호른 주자였던 로라는 팬데믹이 터지자 진로를 바꿔 뉴욕시립대 로스쿨에 입학해 지금은 변호사가 됐다.

꿈을 오늘로 일군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행운아조차 이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은 피할 수 없다. 하고 싶은 욕심, 하기 싫은 욕심, 욕심은 좀처럼 양보하지 않는다. 현실이라는 팽팽한 줄다리기장에는 꿈을 위한 자리라고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6·25전쟁을 겪은 아버지의 수십 년 전 바람을 두 아들이 이어가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내려놓은 비올리스트는 더 이상 손가락 염려 없이 록클라이밍과 하이킹을 즐긴다. 대륙을 옮겨 다니며 무대에 오르는 스타 바이올리니스트의 어린 시절 꿈은 김연아 같은 피겨 스케이트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입시에 낙방해 악기를 포기한 사춘기 소년은 확실치 않은 어느 시점에 음악과 다시 화해한 뒤 세월의 수레로 이곳까지 떠밀려 지금은 뉴욕의 동네 음악가가 됐다. 포기나 우회는 실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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